고명진 관장, "사람이 중심이 되는 문화의 대중화 위한 매개체 역할 하겠다"

김수현 편집국장 | 기사입력 2018/03/01 [14:44]

고명진 관장, "사람이 중심이 되는 문화의 대중화 위한 매개체 역할 하겠다"

김수현 편집국장 | 입력 : 2018/03/01 [14:44]

▲‘아! 나의 조국’ 고명진 기자 대표 전시물(1987) 당시 고명진 기자(현 영월 기자박물관 관장)가 1987년 6월 부산 민주항쟁의 현장에서 직접 찍은 '아! 나의 조국'이라는 제목의 이 사진은 1999년 AP통신의 '금세기 100대 사진'으로 뽑히며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을 대표함. 박물관에서 사진과 당시 촬영했던 사진기와 방독면 등을 비롯해 언론사와 기자들이 취재하며 사용했던 장비 등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역사의 최전선에 있었던 기자 정신을 배울 수 있다.

 

언론인 강제 해직과 언론사 통폐합, 언론기본법 제정 등 신군부 주도 하에 신문·방송·통신을 통폐합한 일련의 언론 탄압 정책이 발효된 1980년.  

12·12사태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세력은 1980년 초에 보안사 정보처에 언론반을 신설하고, 권력 장악에 필수적인 언론 통제를 위해 언론사를 통폐합, 저항적이거나 비판적인 언론인을 해직했다. 

주요 사안 때마다 '보도지침'을 하달, 언론의 자유로운 보도 기능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언론통폐합이 6·29 선언 이후인 1987년 11월10일 폐지될 때까지 이 나라 언론의 목줄을 죄었다. 

결국 전국의 언론기관 중 신문사 11개(중앙지1, 경제지2, 지방지8), 방송사 27개(중앙3, 지방3, MBC 계열21), 통신사 6개 등 44개 언론매체를 통폐합시켰다. 그 외에 정기간행물 172종의 등록을 취소시켰다. 또한 1천여명의 언론인을 강제 해직시켰다. 언론통폐합 이후 1980년12월31일 공포된 ‘언론기본법’으로 언론은 더욱 위축됐다.  

이 격동의 시기에 군계일학의 한 보도사진기자가 있었다.  

  

언론통폐합의 말미인 1987년 6월 부산 민주항쟁의 현장에서 고명진 기자가 찍은 '아! 나의 조국’ 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1999년 AP통신의 '금세기 100대 사진'으로 뽑히며,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을 대표한 사진으로 전해지고 있다.(17면 태극기 있는 사진)  

고명진 기자는 격동의 시대에 죽음을 무릎 쓰고 현장에서 사진 한 장의 기록을 위해 종군기자처럼 살았다. 남보다 30분 먼저 현장에 도착했고, 남보다 30분 뒤에 현장을 떠났다. 그만의 기자정신으로 살았다. 지금도 후배들 양성교육에서 이 점을 강조한다. ‘30분 전과 30분 후의 현장’의 기록은 나만의 유일한 기록으로 남았다는 것. 

 

그는 은퇴 후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의 계획은 분명했다. 그동안 기록한 사진과 당시 촬영했던 사진기와 방독면 등을 비롯해 언론사와 기자들이 취재하며 사용했던 장비 등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역사의 최전선에 있었던 기자 정신을 배울 수 있게 하고자 기자박물관을 설립했다. 강원도 영월에 소재한 영월 미디어기자박물관 고명진 관장을 찾아 기자생활 얘기와 박물관에 대해 들어봤다. 

 

'꼭 3대 가족의 관람'을 말하는 고명진 관장. 그는 뒤에 걸린 옛 한국일보 편집국 마감시간 풍자화를 보며 그 때의 감회가 새롭다고 말한다. [사진=김수현]

 

기자박물관에 대해  

2011년 6월1일 영월군 박물관심의위원회 유치를 결정하고, 이듬해인 2012년 5월24일 본 관을 개관했다.  

2012년 12월31일 강원 제35호 제1종 전문박물관 등록, 2013년 3월6일 한국박물관협회 정회원관 등록, 2013년 5월28일 영월 미디어기자박물관 부설 마을영화관 “뱃말이야기‘ 개관, 2013년 6월26일 국립민속박물관협회 ‘만속생활사박물관’ 협력망 가입, 2013년 7월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시니어사진신문만들기’ 지원사업으로 선정 됐다. 

현재 꾸러기 기자교실, 영월사랑-시니어 사진신문만들기, 농촌가족신문 만들기, 여행신문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립박물관으로서 운영의 어려움은 없는가 

먹고 사는 생활에는 별 어려움은 없다.(웃음) 영월군에서 관을 무상으로 대관해줘 운영의 부담은 없다. 다만, 수익구조가 없어 종사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앞으로 수익구조가 된다면, 제고해볼 부분이다. 박물관 아래쪽에 좋은 시설이 있다. 가족단위 오토캠핑이나 워크샵 용으로 대여해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왜 부상으로 하느냐면, 여기 소장된 전시품들 거의가 선후배·동료들이 기증한 것이기 때문에 저도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고 있다. 

 

개관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 볼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설립 당시보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다.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선후배 기자들도 많이 방문하고 있고,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사진이나 장비 등을 기증하기도 한다. 또 가족단위 관람이 많아 졌고, 학교별 프로그램을 활용해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수익도 되는 사업(?)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저는 가족단위 방문을 좋아하는데, 특히 3대가 같이 오는 것을 권장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고 있다. 또 학교와 단체들이 방문해 사진기자 활동을 보는 것도 있지만, 부대시설을 이용해 자연과 친해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방문 가족마다 사진을 다 찍어 준다. 영월 얘기를 다시 한번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다.  

  

언론통폐합의 말미 쯤인 1987년 격동의 시대 현장 보도사진 기자였는데, 개관 후 선후배와 동기들을 만나면 어떤가 

정말 감회가 새롭다. 지금 생각해볼 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똑같이 일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웃음) 지금도 귓가에 최루탄 발사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도로마다 덮여있는 듯하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좋은 동료였다. 서로 돕고 돕지 않았다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었다. 

  

당시의 기자와 지금의 사진기자를 비교한다면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사진기자는 불쌍하다(?). 옛날에는 마감시간이 있어서 그나마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마감시간이 없다. 인터넷 신문 때문이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에 비교라기보다는 ‘처지(?)’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때의 사진기자는 카메라만 메고 사진만 잘 찍으면 됐다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를 한사람이 해야 한다. 취재하면서 사진을 찍어야 하고, 인터뷰 하면서 사진도 찍어야 한다. 사진기자를 따로 배치할 형편이 못되는 것이다. 물론 일부 분업화 된 신문사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신문사는 열악한 환경이라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평생 사진과 함께 살아온 고명진 관장

연간 관람객은 어떤가 

초창기부터 지난해까지는 평균 6~7천명인데, 금년을 기점으로 1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고정 관람객들이 있고, 단체별, 학교 등 프로그램과 더불어 관람객이 늘어갈 것으로 본다. 

  

보도사진의 생명이라면 무엇인가 

한마디로 기록이다. 훗날에 봐도 기억이 되고, 역사가 되는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다.  

또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 없다.

그 당시 기자들에게 “연합뉴스보다 현장에 30분 먼저 가고, 30분 늦게 현장을 떠나라고 했다. 이는 연합뉴스 사진보다 30분전과 30분 후의 사진은 우리 밖에 없다고. 그 당시엔 정말 대단한 '사진전쟁'시대 였다. 한마디로 1면 톱을 사진 한장으로 말하는 시대였으니까.(웃음)

  

영월군 관련 지원사업에 대해  

영월군에서 엄청난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 박물관을 무상으로 대관해주고 있으니까. 또 프로그램 운영에 관련한 강사를 지원해 주고, 급여는 군에서 지급한다. 저희에게 별수익은 없지만, 이것을 일자리 창출로 보고, 연간 일자리 창출로 보지만, 턱없이 부족한 임금이다. 그래도 박물관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보람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

관람객들이 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만들어 주고, 3대가 소통하는 문화와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 

3대를 강조하는 것은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개념과 의미를 심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이것이 사람이 중심이 되는 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매개체 역할이라고 본다.  

가족신문만들기 프로그램도 그런 의미에서 만든 것이고, 가족단위 프로그램을 끝까지 고집해서라도 ‘가족의, 가족에 의한, 가족을 위한 박물관’이 되고 싶다. 

  

지금의 언론에게 한마디 한다면 

언론에 당부할 것이라.(웃음) 언론이 불특정 다수, 즉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환경이 왔으면 좋겠다.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공통의 관심사를 다뤄줄 수 있는, 항상 공유하는 언론이 되기를 바라고 싶다.  

  

주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처음에 주간지(주간시민) 기자로 시작했어요,(웃음) 주간지라 하면 위클리라는 개념으로 릴렉스(relax) 시킬 수 있는 신문으로 봐야한다. 지면 속에서 자신의 생활을 녹여줄 수 있는 ‘언론의 가치’라고 본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으로 눈길을 끈다는 개념은 이제 버려야 한다. 안그러면 그 매체 또는 신문이 오래가지 못한다. 

작금의 방송프로그램을 봐도 농촌, 귀농귀촌을 많이 다루는데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소중한 말들을 해줬다. 개인적으로 한국일보 선배인 고 관장의 말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마디 한마디에 빠져 들었다. 

 

삶을 릴렉스 시켜주며, 정보를 주는 온라인 매체로서 독자들에게 과거·현재·미래의 가치를 관찰할 수 있게 해주고, 독자들을 위한 ‘눈높이 취재’를 해주기를 바라며, 그런 취재를 할 자세를 가지라고 당부하고 싶다.  

 

영월 미디어기자박물관 :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서강로 1082 

전화 033-372-1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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